어제 검정 선글라스를 끼고 걸어가는 나를 네가 발견하고 자동차 바퀴가 몇 번 굴러가고 나서 차를 세웠지. 검정색 에쿠스를 타고 있는 네 모습 보니까 그동안 잘살았구나 하는 생각에 바라보기가 훨씬 수월했지만 한편으로는 널 우연히 마주친 게 왜 그리 미안한지... 그래서 황급히 골목길로 돌아 네 시야에서 벗어나 버렸지. 그땐 정말 그랬어. 네 마음을 받아 줄 상황이 아니었어. 내 위로 언니, 오빠가 미혼이었고 나 역시 하고 싶은 게 많았음에... 아무리 좋은 조건을 가진 너였다고 해도 독선에 가까울 정도로 자기 중심적인 너는 내게 있어서 결코 매력적인 사람으로 다가올 수가 없었어. 어제 만약 내가 널 피하지 않고 마주쳤다고 가정할 때 혹여 네가 지금 행복하냐고 내게 물으면 망설임 없이 또렷한 목소리로 물론이지... 하고 대답했을 거야. 난 절대 게임에 지는 베팅은 하지 않으니까. 삶이든 사랑이든... 그게 바로 나야.
'깊고 낮은 읊조림'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읊조림(스물 일곱) - 이희숙 (0) | 2004.05.07 |
---|---|
읊조림(스물 여섯) - 이희숙 (0) | 2004.05.04 |
읊조림(스물 넷) - 이희숙 (0) | 2004.04.28 |
읊조림(스물 셋) - 이희숙 (0) | 2004.04.26 |
읊조림(스물 둘) - 이희숙 (0) | 2004.04.1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