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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고 낮은 읊조림

읊조림(아흔) - 이희숙

by 시인촌 2006. 6. 2.

살다보면 목숨마저 송두리째 주어도 아깝지 않을 만큼 사랑한 사람도 
어느 순간 모르는 남보다도 못한 싸늘한 관계로 돌아설 수도 있고 
두 번 다시는 사랑하지 않으리라 다짐했던 가슴에도 
세월이 약이라는 유행가 가사처럼   
또 하나의 사랑을 받아들일 자리가 생긴다는 것을 
많은 사람들은 경험과 학습에 의해 알고 있지만 
누군가를 가슴으로 받아들이는데 있어서는 
첫 경험을 하는 사람처럼 서툰 구석이 있기 마련이다.
그 서툰 구석은 서로를 제대로 이해하기도 전에 
원치 않는 상처를 주게 되기도 하지만 
그 반대로 좌충우돌하는 사이 모난 돌이 서서히 둥근 원이 되듯 
사람을 더 한층 성숙하게 하는 기회를 제공하기도 한다.
그래서인지 나는 사랑해보지 않은 사람보다 
누군가를 사랑하고 있거나 사랑해 본 경험이 있는 사람에게서 
종종 더 사람냄새를 느낄 때가 있다.

일생동안 단 한사람만을 사랑할 수 있다면 그보다 더한 축복은 없겠지만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인생 길 어느 한 모퉁이에서는 
누군가의 못 견디게 그리운 사람이었거나
가슴을 무너지게 하는 사람이었는지도 모르고 
나 역시 어느 한 시절에는 
누군가의 가슴을 뜨겁게 달군 태양이었을지도 모르고 
목숨마저 송두리째 주어도 아깝지 않을 만큼 소중한 사람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우리 자신이 인정해야 하는 것은
사랑도 그리움도 나이가 든다는 사실이다. 

오랜만에 컴퓨터 앞에 앉을 시간을 만든 이 밤, 
행복해지기 위한 몰입을 위해
몇 가지 질문을 내 자신에게 던진다.
지나간 어제, 
끝없이 나 자신을 쇠처럼 뜨겁게 달구어내는 열정으로 살아냈는지?
진정 마음을 다해 사랑했으며
받은 사랑에 눈물겹도록 가슴 떨려하며 감사했는지? 
사랑함에 있어 
있는 그대로의 나를 상대에게 얼마만큼 보여주려 애썼으며
상대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얼마만큼 가슴 벅차게 껴안으려 노력하였는지?
마주해야 할 오늘,
나 자신을 뜨겁게 달구어낼 준비는 되어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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