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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를 통째로 들이는 방법 - 희야 이희숙 그리움이 깊어 구멍 난 가슴기약 없는 기다림에 까맣게 타 버렸네 그리움에 타버린 가슴처럼 검은 돌담길을 거니네 너영 나영 천천히 걸으며아영 고영 찬찬히 둘러보니나도 그만 겹겹의 시간을 품은 제주의 돌이 되네  하영 하영 부는 바람에나도 마냥 흔들리네 그대로 돌이 되고 바람 되어 동백꽃 향기처럼 제주에 녹아드네  * 너영 나영'너랑 나랑' 제주도 방언  아영 고영'안듯 모르는 듯' 제주도 방언  하영 '많이'의 방언  2018년 1월 - 喜也 李姬淑 2024. 8. 26.
그래도와 아직도라는 섬 - 희야 이희숙 무진장 사랑을 기다리던 시대는 끝났다전설처럼 전해지는 사랑이 있을 뿐 외로워서 사랑하고참을 수 없어 이별하는 사람들이꽃잎처럼 뒹굴다 빌딩 숲으로 사라지는 오늘느닷없이 문득바람결에 감추고 꽃잎에 묻어둔 사랑이 생각나네요 아직도라는 이름의 환승역으로 달려가잃어버린 사랑을 리필하면보내고 돌아선 자리마다첫눈처럼 사랑이 찾아올까요 그래도라는 이름의 환승역으로 달려가잊어버린 그리움을 고속 충전하면떠나온 길목마다봄꽃처럼 그리움이 피어날까요 오늘은 어쩐지 무작정 자꾸만 그래도와 아직도 사이에서 서성이는 그대가기적소리 울리며 그리움행 열차를 타고 달려올 것만 같아요  2010년 - 喜也 李姬淑 2024. 8. 24.
햇볕 과식의 부작용 - 희야 이희숙 여름이면 놀고 있는 햇볕이 아까워 옥상으로 들락날락거린다 햇볕 샤워하면 잠이 잘 온다지만과하면 탈 나기 십상피부는 발갛게 타오르고기미 잡티에 피부트러블도 피할 수 없지 한바탕 놀고 나면 샤워는 일상그때마다 빨랫감은 나오고 물 사용은 늘고 이래저래 손해 보는 장사다 세탁한 옷을  탈탈 털어 빨랫줄에 널면생전에 엄마는 "빨아서 조진다 복 나간다 그만 털어라" "늙으면 병든다 대충 살아라"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은 말이지만 여태 그 버릇 그대로다 35도가 넘는 오늘도 놀고 있는 햇볕이 아까워아침부터 옥상으로 출근한다더운데 건조기는 폼으로 있냐며 편하게 살라지만고칠 생각이 없으니 참으로 병이 깊다  2024년 08월 - 喜也 李姬淑 2024. 8. 24.
사랑의 유효기간 - 희야 이희숙 나긋나긋한 봄비의 손길로 무딘 감정을 깨워 서로의 사랑이 되었는데 이따금 시간이 없다는 핑계를 대며멀어지는 연습을 하고만나면 습관처럼 변명부터 늘어놓지 스며들어 강물처럼 뒤섞이던 설렘은 사라지고 푸석해진 머리카락처럼 윤기 잃은 의무감만 남아 간혹 다른 곳을 보고 웃는 건지도 몰라 두근거림이 빠진 연애는 익숙해서 편하지만 가까워지면 슬그머니 멀어지고 싶고멀어지면 살짝 다가서고 싶은 건지도 몰라 사랑한다는 건 끌어당기는 일보드라운 햇살에 꽃 피우는 일 나의 눈빛에 멀어지는 너의 걸음을 끌어당기고너의 눈빛에 흔들리는 나의 마음이 닿아예쁜 꽃송이 피워낼 수 있을까   2024년 - 喜也 李姬淑 2024. 8. 23.
여기, 허기를 채워주는 일상이 행복으로 채워져도 나만을 위한 시간이 부족하면 마음에 허기가 진다 그럴 때면 서울 사는 딸 집에 간다 주인을 닮아서 친절한 작은집은 몇 걸음만 움직여도 목표물을 낚아챌 수 있다거나 쓱 둘러봐도 뭐가 있는지 쏙 들어와 어쩌다 찾는 내겐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다 딸이 출근하고 나면 주방 욕실 냉장고 세탁기 할 것 없이 하나둘 곁으로 바싹 다가와 앉는다 모 드라마에 나와 공전의 히트를 친 토스트기도 숨겨 둔 팔을 내밀어 악수를 청하고 선물로 받은 소국도 배시시 웃으며 말을 걸고 구례오일장에서 이사 온 다육이도 반갑다고 환한 얼굴로 인사하고 걸어 둔 드라이기도 어서 외출 준비하라고 등 떠민다 아담하지만 있을 건 다 있는 이곳은 해묵은 감정도 보듬어 주고 위로받지 못한 감정마저도 보듬어 주는 희한한 공간이.. 2024. 8. 22.
엄마의 명약 - 희야 이희숙 친정집에는 콩나물시루가 배경처럼 놓여 있었다 온 식구가 함께 살던 그 시절, 콩나물은 비빔밥 단골손님인 콩나물무침 파 송송 시원한 콩나물국 콩나물이 들어가 더 맛난 갱시기로 가족들의 입맛을 살렸다 일 년에 두세 번 고향 집을 찾으면 엄마가 안 계신 마루에 앉아 어린 시절을 떠올리면 생각나는 건 몸살감기로 앓아누웠을 때 엄마가 끓여주신 갱시기 한 그릇 아플 때 약을 먹어도 며칠은 가는데 따끈한 갱시기 한술을 뜨면 씻은 듯 낫는 기분이 들어 아플 때면 갱시기를 찾았다 어쩌다 몸살감기로 몸져눕는 날이면 왈칵 엄마가 보고 싶고 멸치육수에 식은 밥과 콩나물파계란김치떡국북어고구마를 넣어 끓인 영양 만점 울 엄마표 갱시기가 그리워서 털고 일어나 갱시기를 끓인다 한 그릇의 갱시기를 잊지 못하는 건 엄마의 사랑이 못내 .. 2024. 8. 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