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 있는 간이역248 추억 굽기 1부모님이 떠나고 없는 고향에어린 시절 살았던 바로 옆집을 산 홍자놀다 오자고 전화가 왔다“찜질방이 따로 없다. 옛날 얘기하면서 놀자"일이 있어서 못 갈 것 같다고 하자금자가 전화 와서“군불 땐 방에 몸 지지고 오자. 진짜 좋더라” 가로등 불빛 없는 시월 하순의 시골길 사방이 깜깜하다합천 읍내로 들어가기 전금양에서 거창, 해인사 방면으로 접어들자도로 위엔 내가 비춘 상향등 불빛만 환하고마을엔 개 짖는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꽃게 된장찌개와 나물 반찬으로 늦은 저녁을 먹고절여서 헹군 물기 뺀 열무에배 세 개와 밥을 갈아 넣고 갖은양념 버무려세 통에 나누어 담으니 자정이 지났다 2맥주 한 잔으로 고단했던 하루를 털어내고군불 땐 방에 여자 셋이 누웠다집주인 홍자는 아랫목에 곰처럼 이불 덮고 금자는 덥다며 방문 .. 2024. 11. 20. 자랑스러운 아들에게 사랑하는 아들...오늘 하루도 수고 많았어지금은 모든 사물이 고요해지는 깊은 밤이야이 생각 저 생각에 잠 못 들고 뒤척이다가 오랜만에 너에게 편지를 써 어린 시절 수학영재였던 네가 고등학교 때부터 기대에 못 미쳐목까지 차오른 말을 누르고 아무렇지 않은 듯 위로와 응원의 말로 그날의 너의 기분을 살폈지 성적이 인생의 전부는 아니지만잘하면 선택할 기회는 더 많다고 생각했던 엄마는언제 터질지 모르는 활화산 같은 너를 보며오랫동안 살얼음판을 걷는 기분이었어 대학에 진학한 후에도 너의 방황은 봉합되지 않아가끔 불편한 마음을 드러낼 때마다엄마의 욕심이 널 힘들게 한 것 같아 마음 아팠어이런 내게 엄마 친구는평생 효도할 것 어릴 때 이미 다 했다며뭘 더 바라냐고 위로와 조언을 해 주었지그때 너로 인해 얼마나 많은 행.. 2024. 9. 1. 휩쓸리다 - 희야 이희숙 어제의 적이 오늘의 동지로 모였다네 편 내 편이 희미한 시대몇 달째 시국이 어쩌고 저쩌고태반주사에 보톡스까지 상한가에 폭등 기미마저 보이고최고의 안줏거리가 되어 내려올 줄 모른다 봄은 저마다의 속도로 가릴 것 없이 오는데정작 듣고 싶은 말은봄의 문턱에 걸려 그만 말을 잊었다 2017년 - 喜也 李姬淑 2024. 8. 31. 차단된 마음- 희야 이희숙 당신을 감금하던 눈빛을 거두자저만치서 물끄러미 바라보던 숲도 작아지고세상 모든 향기도 시들해집니다 당신과 나는 어디쯤에서 꽃이었다가나무였다가 숲이 되었을까요 침묵이 길어질수록 해는 서쪽으로 더 기울고눈빛이 흔들릴 때마다 그어둔 빗금은 조금씩 지워져 나갑니다 언제 적부터 있었던 더듬이였을까요하루도 조용할 날 없습니다오늘도 바람은 내 머리카락 사이로 넘나들고당신은 달아나는 나를 잠자코 보기만 할 뿐 출렁이는 마음을 잠재우러 바다로 가야겠어요바다에 가면 지진 난 마음을 식힐 수 있을까요 당신에게서 걸려 온 전화는 받지 않기로 합니다 2024. 8. 28. 제주를 통째로 들이는 방법 - 희야 이희숙 그리움이 깊어 구멍 난 가슴기약 없는 기다림에 까맣게 타 버렸네 그리움에 타버린 가슴처럼 검은 돌담길을 거니네 너영 나영 천천히 걸으며아영 고영 찬찬히 둘러보니나도 그만 겹겹의 시간을 품은 제주의 돌이 되네 하영 하영 부는 바람에나도 마냥 흔들리네 그대로 돌이 되고 바람 되어 동백꽃 향기처럼 제주에 녹아드네 * 너영 나영'너랑 나랑' 제주도 방언 아영 고영'안듯 모르는 듯' 제주도 방언 하영 '많이'의 방언 2018년 1월 - 喜也 李姬淑 2024. 8. 26. 그래도와 아직도라는 섬 - 희야 이희숙 무진장 사랑을 기다리던 시대는 끝났다전설처럼 전해지는 사랑이 있을 뿐 외로워서 사랑하고참을 수 없어 이별하는 사람들이꽃잎처럼 뒹굴다 빌딩 숲으로 사라지는 오늘느닷없이 문득바람결에 감추고 꽃잎에 묻어둔 사랑이 생각나네요 아직도라는 이름의 환승역으로 달려가잃어버린 사랑을 리필하면보내고 돌아선 자리마다첫눈처럼 사랑이 찾아올까요 그래도라는 이름의 환승역으로 달려가잊어버린 그리움을 고속 충전하면떠나온 길목마다봄꽃처럼 그리움이 피어날까요 오늘은 어쩐지 무작정 자꾸만 그래도와 아직도 사이에서 서성이는 그대가기적소리 울리며 그리움행 열차를 타고 달려올 것만 같아요 2010년 - 喜也 李姬淑 2024. 8. 24. 이전 1 2 3 4 ··· 4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