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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 있는 간이역252

누가 그 많은 상처를 잉태했을까? - 희야 이희숙 단단하던 사이가 무너지는 지점은별거 아닌 사소한 것에서부터 시작된다돌보지 않은 상처가 덧나서 곪는 것처럼대수롭지 않게 넘길 때 틈은 점점 사이를 벌린다믿음을 쌓는 시간은 오래 걸리지만 무너지는 건 한순간이다 시어머니가 돌아가신 그해 크리스마스이브날 번지수를 잘못 찾은 소문은입에서 입으로 건너갈 때마다 몸집을 불려 잔잔한 일상의 행복을 무너트리고 웃음을 앗아갔다 그 일 후 오래도록 불면에 시달린 나는 살기 위해 살아내기 위해끄적이고 끄적이고 또 끄적였다 썼다, 지우고 다시 썼다 지웠던 말 그리고 마음그때는 정말 몰랐다위로받지 못한 채 서둘러 봉인한 감정이돌보지 못한 상처가 이리도 깊고 아플 줄 누가 그 많은 상처를 잉태했을까?   2000년 - 喜也 李姬淑 2024. 6. 27.
남편 - 희야 이희숙 결혼하면 없던 효심도 생긴다는 K 장남의 표본아버지라면 입 안의 혀처럼 알아서 하는 효자 시댁에 관해서는 끝없이 인내심을 요구하는 간 큰 남자  내가 해 준 밥을 세상에서 제일 맛나게 먹고달걀말이와 볶은밥도 잘 만드는 남자사소한 이야기에도 잘 웃어주고내 말을 기억했다가 감동을 선물할 줄 아는 남자 비교하는 걸 세상에서 제일 싫어하고자상하지만 내게 온탕과 냉탕의 맛을 알게 한 아버지도 오빠도 아닌 선생님은 더 아니면서자꾸 뭘 가르치려 드는 남자 세상에서 나와 아이들을 가장 사랑하고나와 아이들이 세상에서 가장 존경하는 지구상 다 둘러봐도 제일 편하고 기댈 수 있는 유일한 사람위에 나열한 걸 다 빼고도 내가 가장 사랑하는 남자   2022년 - 喜也 李姬淑 2024. 6. 27.
꽃은 다 예쁘다 - 희야 이희숙 저 꽃은 저래 저래서 예쁘고조 꽃은 조래 조래서 예쁘고이 꽃은 이래 이래서 예쁘고요 꽃은 요래 요래서 예쁘다 사랑하는 너는 세상 그 어떤 형용사보다 우위에 있다. 그냥 예쁘다하냥 예쁘다마냥 예쁘다너라는 이름의 사랑꽃   * 하냥 [늘의 방언]   2022년 - 喜也 李姬淑 2024. 6. 27.
동안만이라도 - 희야 이희숙 꽃이 피어있는 동안만이라도웃자 웃어버리자이별한 적 없는 사람처럼 바람이 부는 동안만이라도잊자 잊어버리자사랑한 적 없는 사람처럼 비가 내리는 동안만이라도울자 울어버리자한 올의 미련도 남김없이 떠내려가도록   2020년 - 喜也 李姬淑 2021. 10. 23.
바람이 든다는 의미 - 희야 이희숙 울 엄마한테 옷은입고 벗는다는 행위 그 이상의 삶또 하나의 집이다고단했던 하루를 옷의 온기로 어루만져주고바람든 뼈마디 달래주는 비밀스러운 아지트 추분이 지나면 마디마디 바람 든다며겹꽃처럼 껴입어야 산다던 당신벗을 때마다 허물 벗듯 떨어지는 삶의 무게작은 체구에 어찌 다 감당했을까 뼈에 바람이 든다는 의미를예전에는 몰랐네, 정말 몰랐네!바람이 든다는 말은 시리다는 말이고시리다는 말은 아프다는 말임을아프다는 말은 외롭다는 신호인 동시에따뜻한 위로가 필요하다는 말 줄임표임을  2021년 - 喜也 李姬淑 2021. 10. 21.
코로나 19 두 번 다시는 만나지 말자 - 희야 이희숙 하루만 더한 달만 더참자 참아보자금방 지나갈 소나기를 만난 것처럼 조금만 더다시금 더 힘을 내 기다려보자머지않아 봄은 올 테니 일상을 빼앗긴 사람들섬 속에 또 다른 섬이 되었다소소한 행복 눈뜬 채 도둑맞고 사랑도 힘을 잃고 돌아앉는다 몸조심하라는 당부, 잊어버렸는가오늘도 몇 사람 보이지 않네맘 놓고 소리 한번 질러보지도 못하고자고 나면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죽음순서 없는 죽음 앞에서는 국적도 인종도 나이도 묻지 마라모두 시한부 인생이다    2021년 - 喜也 李姬淑 2021. 10. 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