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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 있는 간이역252

즐거운 하례마을 - 희야 이희숙 나는 이상한 여자입니다십이월 첫날어쩌자는 작정도 없이마음 찢고 나온 생각 따라별안간 제주에서 살아보기를 하러 온 나는 이상한 여자입니다대문 없는 단독주택을 빌려큰 그림을 그리러 온날마다 제주를 통째로 훔치는 상상을 하지만한 번도 훔친 적 없는 아무려면 어때요살 오른 애기동백이 밤마다 무도회를 열고상큼하고 달콤한 말투를 가진 감귤이 온 동네를 기웃거려도이상할 것 없는 즐거운 하례마을인걸요 날 것 같은 말투를 바당*같이 알아듣는 돌과우리말을 몬딱** 외국어로 알아듣는 나무 앞에서는 쉿 목소리를 낮춰요단박에 나무인 걸 들킬지도 모르니까요 아무려면 어때요아침이면 한걸음에 달려온 한라산이공천포를 밀어 올린 해와 입맞춤하고잠들지 못한 저녁이면더듬더듬 전하는 바람의 안부로 잠이 드는여기는 서귀포 하례마을인걸요 * 바.. 2018. 4. 5.
살다 보면 누구나 다 그래 - 희야 이희숙 살다 보면 누구나 다 그래 이 말처럼 외로운 말이 또 있을까같은 공간 마주 보고 있어도 끝내 내 것이 될 수 없는 사람처럼  살다 보면 누구나 다 그래이 말처럼 가벼운 말도 또 있을까 그 생각만 하면 왠지 쓸쓸하고 쓸쓸해져 화롯불 같은 따뜻한 말이 그립다 오늘도 주인 없는 말이 하늘을 날고 시장 한복판을 서성이다 사연들로 넘쳐나는 저녁거리를 돌아 기억에도 없는 술집에서 막을 내린다 잘 가라 온 생애를 걸고 무시로 곁을 지킨 말더러 위로도 되었지만끝내 내 것이 될 수 없어 외로웠던 말  2017년 12월 - 喜也 李姬淑 2017. 12. 18.
쉬어가는 섬 ㅡ 희야 이희숙 그래도와 아직도를 아시나요가다가 힘들면 잠시 쉬어가는 섬 깨지고 넘어져 더는 아무것도 아닐 때그래도 괜찮다고 말해 주는 이가단 한 사람이라도 있다면 깜깜한 방에 불 밝히듯스스로 등대가 되어 길을 찾는 섬 생각만 하다 끝내 아무것도 못 할 때아직도 늦지 않았다 토닥여주는 이가단 한 사람이라도 곁에 있다면물길을 만난 배처럼 스스로 길을 내고 노를 젓는 섬  왈칵 세상의 끝과 마주하거든그래도와 아직도로 떠나라 밤새 폭우가 내리고 폭설이 쌓여도 젖지 않고 묶이지 않는 섬 가다가 힘들면 잠시 쉬어가는 섬이 있다그래도와 아직도가 있다   2017년 12월 - 喜也 李姬淑 2017. 12. 14.
봄날 - 희야 이희숙 햇살 좋은 날 먼 길 돌아온 바람의 전언을 듣다가 시간이 버무려낸 구름의 연서를 읽다가 실눈 뜨고 오는 봄의 속살을 만지다가 온 우주를 들었다 놨다 하는 꽃들의 행진을 본다 이런 날 가만가만 스며드는 봄비처럼 마디마디 매듭 풀고 네가 오면 좋겠다 2017년 03월 - 喜也 이희숙 2017. 4. 6.
생각을 지우는 카페 - 희야 이희숙 지난가을 각중에 찾아온 불청객은부실한 대접에도 구석진 방에 앉아 말이 없다밀어내려는 자와 눌러앉으려는 자 사이에싸움이 길어질수록 구경꾼의 주머니는 두둑하다 씹는 자유를 저당 잡힌 턱은먹는 즐거움마저 압류당한 채 눈치만 살피고싸움의 최대수혜자인 구경꾼은 스트레스를 줄이고멍 때리는 시간을 많이 가지라는 처방전을 내놓지만어쩐지 나의 봄은 눈치 없는 애인처럼 머뭇거리고완치 불가 판정을 받은 턱관절 디스크는대놓고 거드름을 피운다 이럴 어째, 진작 어르고 달래서 구워삶아볼걸손이 발이 되도록 싹싹 빌어나 볼걸이 일을 어쩐다 정말 어쩐다지금이라도 보채지 말고 종종 멍 때리는 연습을 하면못 이기는 척 아니 온 듯 돌아가려나그러면 나는 막 미치도록 좋아서 아담한 카페 하나 열어야지작명소에 맡기지 않고 철학적으로 지어야지 .. 2017. 4. 4.
아이에게 배우다 - 희야 이희숙 현관에 들어서자 짖어대는 개평화는 깨져버렸다개의 이름을 부르며적이 아님을 증명하려 애써보지만개의 입장에서는 침범한 자에게 자비란 없다짖어대는 소리가 박힐수록시간은 멈추고 긴장은 절정을 향해 달린다 엄마 치맛자락에 숨어있던 아이“짖게 해서 미안해”개 처지에서 보면 원인 제공은 사람이니아이는 받아들이며상대에게 다가가는 법을 이해한 전략가요같은 편마저 무장해제시킨 영웅이다  2017년 03월 - 喜也 이희숙 2017. 4.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