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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사랑 어떤 이별 - 희야 이희숙 눈 온다사랑이 오는가 보다 폭설이다한없이 속삭이는 사랑의 증표인가 보다 비 온다사랑이 떠나는가 보다 폭우다우리들의 사랑이 추억으로 쏟아지나 보다    2022년 - 喜也 李姬淑 2024. 6. 28.
어느 가을 아침 - 희야 이희숙 밖으로 나가 밤새 떨어진 장미잎 쓸어 담고정원에 제집인양 들락거린 길냥이 흔적 치우고라일락, 매화, 산수유 할 것 없이 꼼꼼하게 물 주고옥상에 올라가 그늘을 내어 준 나무들과 눈인사하고벤치에 앉아 멍하니 하늘을 바라본다파란 하늘이 바다처럼 맑고 깊다 식전부터 커피 한 잔 마시고 싶어아래층으로 내려와 커피포트에 물 올리고창문 열고 자식 같은 화분들 물 주고 나니 물은 끓었다좋아하는 명품 커피도 있는데종이컵에 달랑 절반도 안 되는 물 부어 커피믹스 한 잔이라니예쁜 커피잔이 저리 수두룩한데편하다는 이유가 맛도 분위기도 다 포기한어느 가을 아침   2022년 - 喜也 李姬淑 2024. 6. 27.
누가 그 많은 상처를 잉태했을까? - 희야 이희숙 단단하던 사이가 무너지는 지점은별거 아닌 사소한 것에서부터 시작된다돌보지 않은 상처가 덧나서 곪는 것처럼대수롭지 않게 넘길 때 틈은 점점 사이를 벌린다믿음을 쌓는 시간은 오래 걸리지만 무너지는 건 한순간이다 시어머니가 돌아가신 그해 크리스마스이브날 번지수를 잘못 찾은 소문은입에서 입으로 건너갈 때마다 몸집을 불려 잔잔한 일상의 행복을 무너트리고 웃음을 앗아갔다 그 일 후 오래도록 불면에 시달린 나는 살기 위해 살아내기 위해끄적이고 끄적이고 또 끄적였다 썼다, 지우고 다시 썼다 지웠던 말 그리고 마음그때는 정말 몰랐다위로받지 못한 채 서둘러 봉인한 감정이돌보지 못한 상처가 이리도 깊고 아플 줄 누가 그 많은 상처를 잉태했을까?   2000년 - 喜也 李姬淑 2024. 6. 27.
남편 - 희야 이희숙 결혼하면 없던 효심도 생긴다는 K 장남의 표본아버지라면 입 안의 혀처럼 알아서 하는 효자 시댁에 관해서는 끝없이 인내심을 요구하는 간 큰 남자  내가 해 준 밥을 세상에서 제일 맛나게 먹고달걀말이와 볶은밥도 잘 만드는 남자사소한 이야기에도 잘 웃어주고내 말을 기억했다가 감동을 선물할 줄 아는 남자 비교하는 걸 세상에서 제일 싫어하고자상하지만 내게 온탕과 냉탕의 맛을 알게 한 아버지도 오빠도 아닌 선생님은 더 아니면서자꾸 뭘 가르치려 드는 남자 세상에서 나와 아이들을 가장 사랑하고나와 아이들이 세상에서 가장 존경하는 지구상 다 둘러봐도 제일 편하고 기댈 수 있는 유일한 사람위에 나열한 걸 다 빼고도 내가 가장 사랑하는 남자   2022년 - 喜也 李姬淑 2024. 6. 27.
꽃은 다 예쁘다 - 희야 이희숙 저 꽃은 저래 저래서 예쁘고조 꽃은 조래 조래서 예쁘고이 꽃은 이래 이래서 예쁘고요 꽃은 요래 요래서 예쁘다 사랑하는 너는 세상 그 어떤 형용사보다 우위에 있다. 그냥 예쁘다하냥 예쁘다마냥 예쁘다너라는 이름의 사랑꽃   * 하냥 [늘의 방언]   2022년 - 喜也 李姬淑 2024. 6. 27.
추억이 바람처럼 길을 내며 지나간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종갓집은 덩그러니 빈집만 남아 있지만, 몇 번의 계절이 돌고 도는 동안에도 몇 그루의 나무와 야생화, 알뿌리 식물까지 용케도 살아 매년 꽃을 피운다. 부산에 사는 외아들인 오빠와 고향 근처 읍내에 사는 둘째 언니가 가끔 들러 청소도 하고 풀도 뽑고 나무도 손질한 덕분에 누군가 사는 것 같은 착각이 들곤 한다. 오래전 어느 여름날, 오 남매 모두 고향 집에 모였다. 배우자와 자식들까지 한자리에 모이니 19명 대식구다. 마당에 자리를 펴고 앉아 합천 한우와 흑돼지 잔치를 벌였다. 옆집에 사는 5촌 아재도 부르니 그야말로 어머니가 떠난 종갓집이 모처럼 활기차다. 여름이라고는 하지만 저녁이 되자 선선하다 못해 쌀쌀하기까지 하다. 동네에서 일찍이 기름보일러를 놓은 친정집은 식구가 없다는 이유로 .. 2021. 10. 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