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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 있는 간이역

선입견

by 시인촌 2025. 12. 12.

아양교 근처 금마루에서 늦은 점심을 먹고

커피 한 잔 생각에 길을 건넜다

하필 테이크아웃 전문점, 돌아서려는데

함께한 여류시인이 다방이 있다며 손짓한다

 

다방이라는 말

늙은 남자들만의 행성 같아

아직은 그 행성에 닿고 싶지 않았다

 

피했더니 더 크게 만난다는 말처럼

문을 열자 커피트리 안에는

칠십을 넘긴 어르신들의 온기가

의자마다 진을 치고 있었다

 

시간이란 건 기다릴 줄 모르고

그새 먼저 가 있다

 

중년인 나도

어린애들 눈에는 이미 할머니일 텐데

마음에 괜한 뽕 날개라도 달고

아직은 아니라고 말하고 싶었던 걸까

 

문득, 한겨울 나목처럼 서늘해진다

 

 

2025년 12월 - 喜也 李姬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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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 노트: 아양교* 근처 금마루에서 늦은 점심을 먹고 커피 한 잔 생각에 카페를 찾았다. 하필 테이크아웃 전문점이라 발길을 돌리려는데, 함께한 여류시인께서 다방이 있다며 가잔다. 왠지 다방은 늙고 은퇴 한 일없는 할아버지들의 아지트 같아 어쩐지 낯설고, 먼 행성처럼 느껴진다. 아직은 그 세계에 발 들이고 싶지 않아 맞은편의 커피트리로 가자며 방향을 틀었다. 그런데 사람들이 농담처럼 하는 말, ‘피했더니 더 크게 만난다.’ 그 말이 딱 들어맞았다. 카페에 들어서자 평균 연령 70대로 보이는 어르신들이 진을 치고 계신다. 생각해 보면, 시간이라는 건 기다릴 줄 모르고 앞만 보고 달린다. 세월 가는 게 눈 감았다 뜨면 이만큼 왔다고들 하는데, 틀린 말이 아니다 싶다. 중년인 나도 어린애들 눈에는 이미 할머니로 보일지도 모른다. 그런데도 내 나이 따윈 잠시 잊고 마음에 뽕 날개라도 달았던 것인지, 분위기 좋은 카페에서 커피 마시며 도란도란 이야기 나누고 싶었던 마음이 괜스레 멋쩍어진다. 반성이라도 해야 할 판이니, 한겨울 발가벗은 나무처럼 서늘해진다. (2024년 5월 만남이 있었던 날 메모)

 

 

아양교*: 대구광역시 동구 신암동과 동촌동을 잇는 금호강의 다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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