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토(凍土)의 끝단에서 꽃은
색(色)을 먼저 풀어놓는다
아직 추운데
채도를 높인 것들이
몰래 담을 넘는다
우리는 앞과 뒤를 세우는 일에 길들여졌다
먼저와 나중이라는 눈금을 그어 두어야
발밑의 흔들림을 견딜 수 있었으므로
순서대로 피어야 봄이라 믿는 동안
개나리와 벚꽃은 차례를 묻지 않고
한꺼번에 환해진다
피어남은 누구의 허락을 기다리는 일이 아니라
생(生)의 무게가 서로에게 번지는 일
줄 세우던 손을 내려놓고
이름 붙이려던 혀를 접는다
조금 느려도
길을 헤매어도 괜찮은 것은
지금 여기
우리가 발 딛고 서 있는
이 머무름이 이미 도착이기 때문
3월은 질서가 무너진 달이 아니라
너와 나 사이의 그늘이 먼저 지워지는 달
이름을 부르지 않아도 웃음이 나고
우리 안의 봄이 차올라 서로에게 닿는 달
2026년 2월 - 喜也 이희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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