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대충 해라, 늙으면 병 된다
돌아가신 엄마와 언니들이 남긴
안부 같은 잔소리를 어깨에 얹고
오전 1시 30분, 깨어있던 하루의 문을 닫는다
잔물결처럼 어깨 톡톡 두드리며 내게 하는 말
오늘도 수고했어
불면의 끝자락엔 흔적처럼 눈이 따갑고
2시 30분을 지나 잠깐 비쳤던 꿈의 꼬리를 놓치면
어느덧 새벽 5시 40분
고3 딸의 아침밥을 지으며
나의 하루는 다시 기지개를 켠다
애들 다 키워 대학 보내면 심심할 거라던
인생 선배들의 말은
호기심 많고 할 것 많은 내게는 먼 나라 이야기지만
아이들 어릴 적이 가장 눈부셨다는 그 말만은
이제야 알 것 같은 나이
2
십 대부터 이어진 불면의 끈이 최근 느슨해졌다
잠드는 시각도 수면의 양도 그대로지만
하고 싶은 거 하다가 잠자리에 드는
자기만의 습관을 만들라는 의사의 당부와
부엉이처럼 깨어있는 내 결을
묵묵히 지켜봐 준 남편 덕분에
세상이 잠든 시간은 시를 빚는 시간
오전 2시 30분을 넘어
생각이 범람하는 날은 3시를 훌쩍 넘기기도 한다
삼사십 대의 글쓰기가 쏟아지는 소나기였다면
오십 대의 글은 메모 속에 묵혀 둔 마음을
거르고 덧붙이며 몇 년을 삭히는 일
시를 쓴다는 건,
더 높은 산을 오르는 고행이 아니라
단어 하나가 가진 생의 무게를
하나하나 알아가는 일임을 깨닫는 일
이 시간이 숨 쉴 수 있도록
가만히 곁을 내어주는 남편의 배려
비로소 평온한
나의 25시
시작노트
아이들이 십 대였던 시절, 저는 늘 '나의 허기'를 채우기 위해 모두가 잠든 깊은 밤
시, 수필, 소설... 장르를 가리지 않고 써 내려갔던 그 시간은
치열한 생존의 기록이기도 했습니다.
어떤 날은 5분 만에 터져 나온 즉흥시를 다듬지도 못한 채 내보냈고
어떤 날은 홍수처럼 밀려오는 생각들을 내일의 일과를 위해 억지로 누르며 잠을 청해야 했습니다.
언제나 1순위는 가족이었기에,
두 아이가 대학생이 되기 전까지 글을 쓰는 시간은 늘 간절하고 부족했습니다.
24시간을 쪼개어 살며 분주히 움직이는 저를 보고,
남편은 어느 날 '25시를 사는 여자'라 불렀습니다.
오래전 툭 던진 그 한마디가 제 가슴에는 시의 씨앗으로 남았습니다.
이 시는 저의 일상이자, 글쓰기에 대한 고백입니다.
오랜 시간 묵혀 두었던 글에 최근의 변화된 마음을 덧대어 완성했습니다.
십 대부터 이어진 불면의 끈이 이제야 조금 느슨해진 문턱에서
비로소 평온하게 마주한 저의 '25시'를 기록해 봅니다.
2026년 2월 - 喜也 이희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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