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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야 이희숙358

여기, 허기를 채워주는 일상이 행복으로 채워져도 나만을 위한 시간이 부족하면 마음에 허기가 진다 그럴 때면 서울 사는 딸 집에 간다 주인을 닮아서 친절한 작은집은 몇 걸음만 움직여도 목표물을 낚아챌 수 있다거나 쓱 둘러봐도 뭐가 있는지 쏙 들어와 어쩌다 찾는 내겐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다 딸이 출근하고 나면 주방 욕실 냉장고 세탁기 할 것 없이 하나둘 곁으로 바싹 다가와 앉는다 모 드라마에 나와 공전의 히트를 친 토스트기도 숨겨 둔 팔을 내밀어 악수를 청하고 선물로 받은 소국도 배시시 웃으며 말을 걸고 구례오일장에서 이사 온 다육이도 반갑다고 환한 얼굴로 인사하고 걸어 둔 드라이기도 어서 외출 준비하라고 등 떠민다 아담하지만 있을 건 다 있는 이곳은 해묵은 감정도 보듬어 주고 위로받지 못한 감정마저도 보듬어 주는 희한한 공간이.. 2024. 8. 22.
엄마의 명약 - 희야 이희숙 친정집에는 콩나물시루가 배경처럼 놓여 있었다 온 식구가 함께 살던 그 시절, 콩나물은 비빔밥 단골손님인 콩나물무침 파 송송 시원한 콩나물국 콩나물이 들어가 더 맛난 갱시기로 가족들의 입맛을 살렸다 일 년에 두세 번 고향 집을 찾으면 엄마가 안 계신 마루에 앉아 어린 시절을 떠올리면 생각나는 건 몸살감기로 앓아누웠을 때 엄마가 끓여주신 갱시기 한 그릇 아플 때 약을 먹어도 며칠은 가는데 따끈한 갱시기 한술을 뜨면 씻은 듯 낫는 기분이 들어 아플 때면 갱시기를 찾았다 어쩌다 몸살감기로 몸져눕는 날이면 왈칵 엄마가 보고 싶고 멸치육수에 식은 밥과 콩나물파계란김치떡국북어고구마를 넣어 끓인 영양 만점 울 엄마표 갱시기가 그리워서 털고 일어나 갱시기를 끓인다 한 그릇의 갱시기를 잊지 못하는 건 엄마의 사랑이 못내 .. 2024. 8. 22.
아름다운 나이 - 희야 이희숙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세월의 흔적을 비켜 갈 수 없고주름진 얼굴과 깜빡이는 기억을 피할 수 없고어설픈 행동과 느려진 걸음걸이를 어쩌지 못하는 것 설레며 단장하는 날도 큰소리로 웃는 일도 줄어 어쩌다 벌써 이 나이가 되었나 싶어문득 허무한 생각마저 들지만살아온 경험치가 지층처럼 쌓여 마음 한편에 넓고 환한 방이 생겨나는 것 어른이 된다는 것은가시처럼 박혀 있던 욕심들을 내려놓을 줄 알고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과별일 없이 다 지나갈 거라는 믿음상처를 상처로 받아들이지 않을 여유가 생겨나는 것 지나온 길 되돌아보니 세상사 다 거기서 거기이해 못 할 것도 용서 못 할 일도 없어고로, 연꽃처럼 피고 닫히는 때를 잘 아는 지금이 좋다  2018년 - 喜也 李姬淑 2024. 8. 21.
언제나 새로운 청춘센터 - 희야 이희숙 눈에 익은 어린이집이 사라지고생소한 간판이 떡하니 걸렸다 둘은 고사하고 하나도 많다며 아이 낳기를 주저하는 요즘 세태소문 없이 사라지는 건 어쩌면 예견된 일 기억은 잃어도 사람 사는 곳은 매한가지가끔 큰 소리로 싸우기도 하고 마치 지금 일어나는 일처럼 말하기도 한다처음에는 남편 얘기인 줄 알았는데 듣다 보면 아들 이야기 요양원보다는 근사한 이름을 가진 청춘복지센터에는과거를 되새김질하는 사람들이 산다그들만이 사는 세상에서 말하는 사람도 듣는 사람도 처음인 듯 같은 말을 하고 또 하고 반복하지만마음은 언제나 청춘이다 온 생애를 다 바쳐 열심히 살았던 사람들그들에게도 고단했지만 눈부셨던 청춘이 있었다침대 하나가 자기 집 전부이며 사유 공간인 그곳에언제나 환한 봄이 다녀 간다 그곳에는 늙지 않는 청춘들만 있다 2024. 8. 21.
밀당 - 희야 이희숙 끝날 줄 모르는 줄다리기승부를 가늠할 수 없이 팽팽하다 방심하면 어김없이 탈이 났다시도 때도 없이 번갈아 가며 켜지는 빨강 신호등 자칫하다간 이방인에게 주도권을 뺏길까 조바심 난다허락도 없이 불쑥 다가온 너, 면역체계 이상 별일 없이 지나간 날은 사방이 봄날이었고무시로 흔들어대는 날은 온통 겨울이었다아, 기를 쓰며 달려드는 너더 기를 쓰며 달래는 나 몸 구석구석 한랭 전선이 형성되었다봄꽃을 시샘하는 꽃샘추위처럼창밖은 꽃샘바람과 봄꽃의 밀당이 한창인데나의 봄은 아득히 멀기만 하다  2024년 어느 봄날 - 喜也 李姬淑 2024. 8. 14.
독백 - 희야 이희숙 사진 제목 : 아름다운 동행 아름다운 나만의 언어를 갖고 싶다평생 함께여도 좋을 그런 사람 같은 밤새도록 콧대 높은 그는멀어지는 사람처럼 애만 태우고 불면 날아가기 십상인 나의 언어는움켜쥘수록 빠져나가는 모래처럼 힘없이 사라지고 잠들지 못한 밤시간의 징검다리를 건너온 자들은날 새는 줄 모르고 말의 유희를 즐기지만놓지 못한 어정쩡한 말들 사이에서나는, 차마 오도가도 못하고 그토록 갖고 싶던 나의 언어는햇살에 사라지는 눈과 같이잠시 흔적만 남길 뿐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다 마주할수록 멀어지고다가갈수록 낯설어지는나의 언어 그리고 혼잣말  2023년 04월 - 喜也 李姬淑 2024. 8. 12.